우리들이 살아가는 과거는 누군가의 미래였습니다.
그 확률이 100%라고 믿을 수는 없지만.. 퀀텀과 이더리움 같은 플랫폼 코인이 미래에는
이러한 과거를 저희들에게 선물해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희들이 원하지만 상상조차 못했던 일들을
블록체인이 실현시킬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다만 그 기준이..
인간이 제 2의 삶에 의존하고 현재의 삶을 바라보게 하는 기준선은 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선을 넘은 시점부터 인간은 본래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과
제 2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나누어질 것입니다.
언젠가는 제 2의 삶속에 또 다른 2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제 2의 삶을 본래의 삶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저는 블록체인 시스템이 인류에게 공정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이 되어줄 수 있지만
그 이후의 기술력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인간이 지구를 완전하게 '지배'하고
인간이 최소한 '현재' 인간 이상의 문명을 발견하기의 그 시간까지
외로움을 버텨낼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효율성에 의하여 목소리를 잃고,
효율성에 의하여 자신을 잃는 그때
효율성에 의하여 삶을 세상 속으로 파고들지 않는 그때
인간은 과연 무엇을 살아가는 가에 대해 이성적인 대답 말고는
듣지도 보지도 못할 때 느껴지는 고통은 감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지식으로 채운다면
그 누구도 세상에 뛰어들지 못할 것입니다.
먼 미래에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고통일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그 부분에 대하여 느꼈으면 합니다.
제가 '내 마음의 북소리' 첫 장을 읽었을 때 제가 사라짐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소리,촉감,제가 독서실 의자에 앉아있던 무게감, 시각
모든 것이 사라지고 제가 존재함을 느꼈습니다
그 느낌을 인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마 저희 모두가 자궁 속에서 존재하던 그 순간에 느낄 수 있던 감각일 것입니다.
우리는 자아 이전에 태아로서 존재했습니다.
우리는 세포로서 존재해왔습니다.
'나'라는 것은 인지적 차원에서의 존재입니다.
우리는 '나'가 존재하기 이전에도 존재해왔습니다.
지구는 생물이 살 수 없는 행성이었지만 놀랍게도 '생물'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빅뱅은 생물과 물질을 구분하지는 않지만 우연히 폭발하여 생물과 비생물을 구분할 시점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만약 저희가 빅뱅 그 자체라면
저희의 존재 자체는 비물질과 물질을 구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라는 것은 수 많은 형태로 분화되고
그 수 많은 나 사이에서 나를 인식하기 위한 또 다른 '내'가 태어난 것이
지금 이곳에 있는 내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