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밤에 집이 정전이 되어서 초저녁부터 침대에 누워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과연 블록체인이 존재해야할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직접적으로는 신뢰비용의 축소와 탈중앙화된 경제구조를 통한 새로운 밸류체인의 탄생이 가장 중요한 두 축일텐데, 이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부분이 생겨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민국가(Nation State)가 붕괴시킬 수 없는 탈국가적 경제시스템과 이를 뒷받침하는 글로벌한 커뮤니티의 탄생.
자본주의는 이미 탄생부터 글로벌한 시스템이었지만, 그 구성원들에 대해 강제와 동의를 모두 행사할 수 있는 국가의 힘을 이용함으로써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자유 무역주의와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의 이동이 아무리 자유로워져도 결국 국민국가 통제의 울타리를 벗어던질 수 없었고, 금융위기이후 전세계적으로 국가주의적 경향은 재강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국가가 붕괴시킬 수 없는 어떤 글로벌한 새로운 시스템이 서서히 커가고 있습니다. 어느 하나의 국가에서 불법화하고 금지시킬 수는 있지만, 결코 완전히 차단시킬 수 없는 새로운 영역이 커가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영역을 가능케하는 기술적인 형식은 블록체인이고, 이 블록체인의 기반은 결국 이를 유지하고자 하는 주체, 즉 커뮤니티입니다. 이 커뮤니티는 단일한 성질의 조직은 아닙니다. 좌에서 우의 다양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이 있고, 대규모 자본도 있고, 투기꾼도 있고, 새로운 테크노크라트를 지향하는 사람도 있고, 무정부주의를 꿈구는 사람도 있고, 보다 평등한 공동체를 지향하는 이상주의자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커뮤니티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이상 국가가 블록체인을 완전히 파괴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는 국가가 절대로 파괴시킬 수 없는 블록체인이야말로 진정한 퍼블릭 체인입니다.
블록체인자체가 새로운 사회상을 저절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국가가 블록체인을 완전히 파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우리 모두가 무정부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신자유주의의 추종자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사회,경제, 정치적 공간과 시스템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기존의 국가와 시민사회가 재구성되어야 하는가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한 스케일의 전쟁의 개막을 감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이나 국가나 눈감고 당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그 변화를 만들어가는 주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