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록체인의 탈중앙화는 절대 진리가 아니다"
=블록체인이나 암호화폐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나 배경이 궁금합니다.
▲멀티미디어보안으로 나름 성공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그 분야는 논문을 쓰기는 좋은데 든든한 산업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목구멍에 풀칠 하는 수준으로 연구실을 꾸려나갔다. 그래서 새로운 분야를 찾았는데 암호화폐가 눈에 들어왔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14년쯤부터다.
소속 학과가 정보보호대학원이니 암호이론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암호화폐의 원리는 쉽게 깨우쳤다. 2017년부터 경제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시장 원리도 배웠다. 그런데 암호화폐 산업이 급속히 팽창하다 보니 모든 분야를 다 안다는 건 이제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겸손하게 배우고 또 배우며 살고 있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그동안 '암호화폐의 역사와 교훈'이라는 주제로 많은 강연을 했습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암호화폐와 비트코인 역사는 불과 10년이다. 그런데 이 10년의 역사가 인류 1세기보다 더 다이나믹하고 변화가 빠르다. 이런 시대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탈중앙화와 익명성, 중개기관이 없는 것을 블록체인 특징이라고 한다. 이게 절대진리는 아니다. 언제든 변할 수 있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은 참조모델이지 성경(절대진리)이 아니다. 심지어 성경도 2천년전이나 지금의 해석이 다르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제품이 팔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반면 기술이 부족해도 잘 팔리면 경쟁력이 있다. 너무 기술에 목 매이지 않았으면 한다. 최근 고려대 주최로 메인넷 기능을 진단하는 '톺아보기' 행사를 한 것도 이런 이유다. 기술을 말하기 전에 시장에서 먼저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고려대 암호화폐연구센터가 지난달 주최한 '제 1회 메인넷 톺아보기(샅샅이 살피다는 순우리말) 행사'가 많은 시선을 받았습니다.
▲톺아보기 행사를 한 이유는 단순하다. 메인넷을 만드는 사람들이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최고의 코인이 나올 수 있도록, 그런 플랫폼이 되게 해달라는 거였다.
메인넷을 만드는 사람들이 놓치는 게 많다. 합의 알고리즘과 트랜잭션처리만 강조한다. 이게 아쉬웠다. 메인넷은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코인을 거래소에 올리는 것도 메인넷의 과제가 됐다. 이밖에 트랜잭션 비용과 스토리지 비용, 스마트컨트랙트 설계, 심지어 개발자 커뮤니티도 신경 써야 한다. 이걸 알려주고 싶었다.
합의알고리즘과 초당처리속도(TPS)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 더 균형잡힌 시각을 가져야 한다. 사실, 이번 행사에 메인넷 하나만 참가해도 괜찮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국산 메인넷 두 곳이 참여했다. 행사 자체만으로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2회때는 더 많은 메인넷이 참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1회 결과는 언제 발표하나요? 또 2회 행사는 언제 하나요
▲신중을 기하다 보니 결과가 늦어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톺아보기' 행사를 인증서 써주는, 돈버는 행사로 폄하한다. 행사에 나가면 무조건 도장 찍어 주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말을 새겨는 듣겠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우리가 인증을 주는 게 아니다. 또 만족과 불만족을 평가하는 것도 아니다.
평가를 위해 12개 체크 리스트를 만들었다. 우리는 단지 해당 체크리스트에 메인넷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만 알려준다. 2회 행사는 12월에 할 계획이다. 원래 내년 1월 예정이였는데 앞당겼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분리 가능한가를 놓고 여전히 논란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것도 일종의 이념이다. 논쟁을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 얘기는 꼭 하고 싶다. 현재 블록체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블록체인 개념도 계속 변하고 있다. 나중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돼지고기 이력 추적을 블록체인으로 한다는데, 한번 보고 싶다, 어떻게 구현했는지. 돼지고기와 금 추적을 왜 굳이 블록체인으로 해야 하나.
■ "이중 지불과 51% 공격도 깨져"
=블록체인 만능과 신화에서 벗어나야 하고, 또 블록체인이 단점도 많다고 했는데요
▲블록체인이 단점도 많다. 우선 정보를 블록체인에 올리는 순간 모든 사람이 들여다 본다. 이는 프라이버시 침해나 영업 비밀 공개 위험이 있다.
또 블록체인에 올라온 게 모두가 진실이 아니다. 그런데 진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블록체인에 올라온 건 진실이 아니라, 단지 사람들이 합의 해 준 것뿐이다. 이걸 혼돈하면 안 된다.
그래서 '블록체인이 만능'이나 '블록체인 신화'에 빠지면 안 된다. 블록체인이 가진 단점은 계속 보완될 것이고,
블록체인 개념도 바뀔 거다. 아주 비관적으로 이야기하면 블록체인은 전산학에 나오는 '자료구조'에 불과하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블록체인은 링크드 리스트라는 자료 구조다.
링크드 리스트는 현재 리스트와 리스트를 포인터로 연결한다. 반면 블록체인은 블록과 블록을 해쉬값으로 연결한다. 이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블록체인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는 건, 극단적으로 이야기 하면 자료구조가 세상을 바꾼다는 거다. 하지만 자료구조로는 절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블록체인이 단순히 링크드 리스트여서는 안 되는 이유다. 블록체인에 뭔가 더 혁신적인 게 있어야 한다.
김형중 교수가 한 행사장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블록체인은 해킹에 안전한가요?
▲세상에 해킹을 당하지 않는 시스템은 없다. 블록체인의 특징인 분산시스템이 해킹에 더 효율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 블록체인이 강조하는 투명성도 엔터프라이즈 블록체인에선 오히려 최대 위협이다. 블록체인이 만능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문제다. 블록체인은 보안에 강해 해킹을 당하지 않고, 미들맨을 없애 효율적이며, 투명해서 검증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꼭 그런 건 아니다.
암호화폐의 이중지불도 그렇다. 세상에 완벽한 기술은 없다. 암호화폐도 이중지불이 되게 하는 방법이 많다. '51% 공격'도 마찬가지다. '51% 공격'이 불가능하지 않다. 세계의 컴퓨팅 파워를 모아 51% 공격을 깬 회사가 존재한다.
사악한 사람들이 놀라운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정말 사악한 사람들을 아직 못 봤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 처음 채굴된 2009년 1월 3일이 진정한 의미의 4차 산업혁명 시작이라고 했는데요.
▲내가 강연 할 때 빼먹지 않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앞으로 10년, 20년후 암호화페를 만든 사람이 노벨경제학상을 받을 거라는 거다. 암호화폐는 인류역사에서 굉장히 혁신적인 일이다. 노벨 경제학상은 보통 3명을 묶어 준다. 사토시 나마모토와 비탈릭 부테린, 윌렛, 댄 라리머 등 4명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4명 중 가장 저평가된 인물이 윌넷이다. 월넷은 2013년 처음으로 ICO를 한 사람이다. 이 사람이 왜 중요하냐면 최초로 백서로 ICO를 했고, 먹튀를 안 했다는 점이다. 그는 ICO 후 백서대로 서비스를 구현했다. 만일 그가 ICO후 먹튀를 했다면 암호화폐 최초의 사기가 됐을 거고, 이후 암호화폐는 암흑으로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돈을 모아 백서대로 마스터 코인을 만들었다. 비트코인 위에 다른 프로토콜을 올리고 그 위에 여러 토큰이 돌아가게 구현했다. 이더리움이 첫 번째 플랫폼이 아니다. 윌렛이 처음으로 플랫폼을 구현했다. 한국에서 제일 저평가 된 사람이 윌렛이다.
=ICO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ICO를 무조건 허용해달라고 하는 게 아니다.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피해자 보호 조치를 잘 하고, 우수한 ICO가 살아남게 해달라는 것이다. 마구잡이로 ICO를 허용해 달라는 게 결코 아니다. 양질의 ICO는 허용해야 한다.
■ "책보며 사는게 가장 행복"
=학부때 전공은 무엇이였고, 대학시절은 어땠나요?
▲1974년에 재수해 서울대에 입학했다. 자연계로 들어갔고, 2학년때 과가 갈라져,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석사와 박사는 서울대에서 제어계측공학으로 받았다. 강원대에서 오랫동안 가르치다 2006년 고대로 이직했다. 2000년부터 디지털워터마킹에 관심이 있어 연구를 지속했다. 현재 고대서 멀티미디어 보안을 가르치고 있다.
=중고등 학교 학창시절도 궁금합니다
▲전북 익산이 고향이다. 중고등학교 모두 이리에 있는 남성을 나왔다. 대학에 와서는 공부를 안했다. 큰 꿈을 갖고 대학에 왔는데, 당시 전공 수업이,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 걸 배우는 느낌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는 이야기다(웃음). 당시 사촌형이 이리 공고를 다녔는데, 대학에서 배우는게 사촌형이 보던 책하고 다르지 않았다. 무슨 대학이 이러냐, 새로운 학문이 없을까하며 학과 공부는 안하고 도서관에서 논문집을 보곤했다. 데모도 했다.(웃음)
=하루 24시간이 궁금합니다
▲잠자는 걸 빼면 거의 책을 본다. 예전엔 잠을 적게 잤다. 지금은 나이(54년생)가 있어, 건강 때문에 6시간 이상 자려고 한다.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운동보다 책 보는 게 더 좋다. 건강을 위해 많이 걸어다니려 한다. 가끔 끌려나가 골프를 치기도 한다. 캐디가 잘 봐주면 100점대다. 골프와 관련해 기억나는 게 있다. 4년전쯤인가, 어쩌다 내 평생에 버디를 한번 했다. 그만큼 기억날 게 없을 정도로 여전히 초보 수준이다. 구력은 5년정도 된다.
=취미나 특기는요
▲딱히 없다. 책보고 살 수 있다는 게 가장 행복하다. 잡기를 별로 안 한다. 노래방 가서 노래하면 분위기가 썰렁해진다. 흥을 돋구는 노래가 아니라 그렇다. 노래방 가면 딱 3곡만 부른다. 최성수의 동행과 나훈아의 사랑 등이다. 운동 신경이 안 좋은 것 같다. 공이 무섭다.(웃음)
=종교는 있나요? 가족은요?
기독교다. 대학교 2학년때, 당시 태릉에 있던 서울공대 캠퍼스 내에 교회가 있었다. 당시에는 국립대 내에 있는 유일한 교회였던 것 같다. 시설이 매우 좋았다. 당시 관악산 캠퍼스에서 서울음대 여학생 둘이 서울공대 교회까지 찾아와 자원봉사를 했는데, 한명은 피아노 반주를, 다른 한 명은 성악을 했다. 처음 그 교회에 나간 날 들은 성악곡인 '거룩한 성'이라는 노래는 환상적이었다. 시골 출신(웃음)이라 그렇게 멋있는 곡이 있는 줄 몰랐고, 그 연주에 큰 감동을 받았다.
성경에 나오는 산상수훈이나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같은 구절에 매료됐다. 이전에는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가난한데 복이 있다니, 이해가 안됐다. 나는 익산에서 태어나 중고교를 그곳에서 나왔다. 아버님이 경찰이었는데, 불의를 못 참으셨다. 그러니 적당히 생계를 꾸리는 타입이 아니어서 가난했다. 그래서 일거다. 가난한데 복이 있다고 말을 한 예수의 삶이 궁금했고 멋있어 보였다. 가족은 아내와 대기업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30대 딸이 있다.
=5년후나 10년후 교수님 모습은요?
▲내년이 정년이다. 아직 계획한 건 없다. 집사람이 공학을 한 사람은 부자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젊은 공학도들이 희망을 갖는다면서. 나와는 다소 거리가 먼 이야기다(웃음). 어머님이 늘 그랬다. 사람이 돈을 쫓아가면 안되고, 돈이 사람을 쫓아와야 한다고. 창업은 내 적성에 안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