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은행, 비트코인 등 민간 가상화폐 불허 대신 5년간 법정 가상화폐 준비
페이스북 리브라 추진⋅미중 무역전쟁 대응...중앙은행 가상화폐 발행 탄력

중국 인민은행이 1000억위안(약 17조원)규모의 디지털 위안화 발행을 추진중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가열되는 가운데 중국의 달러 기축통화 흔들기가 가속화될 것임을 예고한다는 지적이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달러 기축통화 문제를 제기하며 위안화 국제화에 본격 시동을 걸었던 중국은 5년전부터는 법정 디지털 화폐 발행을 연구해왔다.

중국이 투기 대상으로 부각된 비트코인 등 민간 가상화폐 거래를 불허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된다. 지난 6월 발표된 페이스북의 글로벌 디지털 화폐 리브라 추진이 중국의 디지털 법정 화폐 발행을 서두르게 했다는 관측도 있다.

17일 중국 블록체인 업계 소식통은 "인민은행이 1000억위안 규모의 디지털 위안화 발행을 준비중이다"라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특정 시간표는 없지만 실험을 위한 준비를 마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대규모 디지털 위안화 발행 추진 소식은 인민은행 전⋅현직 고위관계자들의 디지털 법정 화폐 발행 언급이 최근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최근 두 달새 4차례 언급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인민은행 "디지털 법정 화폐 부르면 나올 수 있는 단계"

무창춘(穆長春) 인민은행 지불결제사 부사장(부국장)은 지난 10일 중국금융40인포럼이 주최한 제3회 중국금융40인 이춘(伊春) 포럼에서 "인민은행의 디지털화폐 연구가 이미 5년 됐다"며 "지금은 ‘부르면 나올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앞서 왕신(王信) 인민은행 연구국 국장 겸 화폐금융국 국장은 7월 8일 디지털금융개방 연구계획 개시 행사에 참석, 리브라를 언급하며 새로운 글로벌 디지털 화폐의 부상을 면밀히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디지털 화폐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정부 기반의 디지털화폐 도입 노력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고 차이나데일리가 전했다.

같은 달 중국 외환관리국이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저우샤오촨(周小川) 전 인민은행 행장은 "베이징의 정책 당국자들은 리브라와 미 달러와 연동된 홍콩달러 발행제도에서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해까지 16년간 인민은행 행장을 지내 ‘미스터 런민비'로 불리는 저우샤오촨은 행장 시절이던 2014년 인민은행에 디지털 화폐 연구회를 만들었고, 2017년엔 이를 연구소로 확대했다.

인민은행은 이달 2일 하반기 업무 화상회의에서 8대 하반기 역점 분야중 하나로 핀테크 발전을 제시하고 "중국 법정 디지털화폐(DC/EP)연구개발 속도를 가속화하고 국내외 가상화폐의 발전 추세를 추적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DC는 디지털 화폐(Digital Currecy),EP는 전자결제(Electronic Payment)를 뜻한다. 알리페이와 위챗페이 등 민간의 온라인 결제가 보편화된 상태에서 디지털 위안화의 사용이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지 의문을 표시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디지털 위안화 유통에 알리바바와 텐센트를 참여시킬 것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디지털 위안화 현금 대체...자금세탁⋅위조 방지 기대

디지털 위안화는 현금을 의미하는 본원통화(M0)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게 인민은행의 설명이다. 요구불예금 등을 추가한 협의의 통화(M1)나 정기예금까지 포함하는 총통화(M2)는 대체 대상이 아니다. 인민은행이 검토중인 첫 디지털위안화 발행 규모(약 1000억위안)는 지난 6월말 기준 M0 잔액 7조 2600억위안의 1.4% 수준이다.

알리페이 위챗페이 같은 온라인 결제나 은행카드는 은행계좌와 연동된다. M1 M2는 이미 디지털화된 것이다. 반면 본원통화를 대체할 디지털 화폐는 아직 없다. 현금은 위조와 돈세탁이 쉽지만 디지털 화폐로 전환되면 추적 관리가 가능하다. 디지털 위안화 발행이 테러 자금세탁이나 위조를 방지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디지털 위안화는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와는 다르다. 발행주체가 중앙은행이라는 점외에도 탈중심화를 대표하는 블록체인 기술이 유일한 기술이 아니다는 점에서 그렇다. 중앙 집중 관리를 받는 것으로 설계되는 것도 비트코인과는 다르다.

무창춘 부사장은 "디지털 위안화의 기술로드맵은 정해진 게 없다"며 "반드시 블록체인이라고 할 수 없다. 어떤 기술도 모두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블록체인을 채택한 가상화폐로는 빠른 결제를 처리하기 힘들다는 점을 들었다. 11월 11일 개최하는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 할인행사인 광군제에서 지난해에는 최고 초당 9만 2771건의 결제가 처리됐지만 비트코인은 초당 7건, 리브라도 초창 1000건만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 부사장은 중국의 유통환경을 감안할 때 최소 초당 30만건을 처리할 수 있어야한다고 강조했다.

무 부사장은 또 인민은행의 신중한 거시경제 관리와 통화정책 조절 역할을 강화하고, 디지털 위안화가 초과발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앙집중 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위안화를 시민들에게 직접 발행하지 않는 것도 가상화폐와는 다르다. 은행 등 기관에 발행하고, 은행이 다시 시민들에게 환전하는 2중 구조로 운영하겠다는 게 인민은행측의 설명이다. 디지털 위안화 초과 발행을 막기 위해 은행은 중앙은행에 100%의 지불준비금을 예치하도록 할 방침이다.

 

♢인민은행 디지털 법정화폐 왜

디지털 위안화 발행이 속도를 내는 배경엔 페이스북의 리브라 추진이 있다. 청화(程華)인민대 교수는 "리브라가 가져온 도전에 대해 중국에서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를 빨리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이 2015년 11월 보고서에서 "민간차원의 디지털 화폐가 확산되면 각국 정부의 통화량 통제가 힘들어지게 된다"며 "통화 당국이 디지털 화폐를 직접 발행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데이브 채프만 BC테크놀로지그룹 임원은 블룸버그통신에 "리브라 발표로 전세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디지털 화폐 계획을 가속하게 된 것은 의삼할 여지가 없다"며 "비 정부기관의 통화 발행이 금융과 결제를 극적으로 망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왕신 국장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는 통화 정책의 효율을 높이고 결제 시스템을 최적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확장 효과도 기대된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의 존 바디어, 마이클 컴호프 이코노미스트는 2016년 7월에 펴낸 ‘중앙은행이 발행한 전자화폐의 거시경제학’ 보고서에서 미국을 사례로 들어 "중앙은행이 국채와 교환하는 조건으로 전자화폐를 발행할 경우 경제를 3%만큼 영구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앤드류 홀데인 BOE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디지털 화폐는 현존하는 통화 정책 도구가 한계에 달했을 때 각국 정부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예금금리가 마이너스가 되면 소비자들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은행에 있는 돈을 금고에 현금으로 보관해 소비가 위축되는 부정적 효과가 있었다. 실물 현금이 디지털 화폐로 대체되면 이런 행태가 줄어들 수 있게된다는 설명이다.

 

♢달러가 지배하는 국제통화체제 도전

"인민은행의 디지털 화폐 발행은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영향를 줄일 수 있을 것"(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이라는 분석도 있다. "리브라가 성공적으로 출시된다면 미국 달러 중심의 국제 통화 체계를 흔들 수 있다"(왕 국장)는 인민은행의 시각과 닿아있다. 디지털 화폐의 보급 확산이 달러 기축통화의 영향력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중국이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의 디지털 버전을 발행해 자본시장에서 광범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해온 것도 달러 기축통화 흔들기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특정 주권국가의 화폐를 기축통화로 사용하는 것은 결함이 많은 만큼 특정 국가와 결부되지 않은 새 기축통화를 창출할 필요가 있다"며 SDR에 슈퍼통화 역할을 맡겨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그해 위안화 국제화에 시동을 건 중국은 2016년엔 위안화를 미 달러, 영국 파운드, 일본 엔, 유로에 이어 SDR 통화바스켓의 5번째 통화로 편입시키는데 성공했다.

중국이 2016년 사상 처음으로 SDR 채권을 발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억 SDR로 당시 환율로 185억 위안(약 3조 1450억원) 규모에 달했다. IMF 회원국이나 국제기구 등이 사용할 뿐 개인이나 기업 투자회사 등은 보유할 수 없어 무늬만 슈퍼통화라는 지적을 받아온 SDR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포석이었다. 인민은행이 디지털 SDR 발행을 요구하고 나선 것도 이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하지만 디지털 위안화가 위안화 국제화로 연결되려면 블록체인 기술을 채택하고, 익명성을 보장하는 개인정보보호가 담보돼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우샤오촨 전 행장도 "개인 정보 보호와 범죄 타격을 위한 사회질서 유지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디지털 화폐에 불법자금 흐름을 감시하기 위한 기능을 강화하면 개인 정보 보호 기능이 떨어지게 된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법정 화폐는 에콰도르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세계 처음으로 시행한 뒤 접었다. 스위스와 노르웨이 등도 추진중이다.